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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정재와 황정민이 만든 느와르의 밀도

by pocket100 202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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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포스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2020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액션 느와르 영화입니다.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다시 마주한 이정재황정민의 조우는 개봉 당시부터 큰 기대를 모았고, 두 배우는 기대 이상으로 각기 다른 에너지와 캐릭터를 구현하며 관객을 몰입시켰습니다. 2025년 현재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 작품은, 단순한 총격 액션 이상의 정서를 담아내며 다시금 회자되고 있습니다.

청부살인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심한 한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쫓는 복수의 화신. 영화는 선악의 명확한 구도 대신, 두 남자의 감정과 목적, 상처와 광기가 충돌하는 과정을 묵직하게 그려냅니다. 하드보일드한 액션의 외피를 입었지만, 그 안에는 부성애, 공허한 복수, 인간의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메시지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피보다 진한 감정의 사투

인남(황정민)은 수년간 암살자로 살아온 인물입니다. 마지막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는 일본에서 은신하며 조용한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암살한 대상이 태국 마약 조직의 핵심 인물, 레이(이정재)의 동생이었음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급격히 비틀립니다.

레이는 동생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로지 복수라는 단 하나의 감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인남을 쫓아 일본, 태국까지 집요하게 추격하며 주변 인물까지 무차별적으로 제거합니다. 광기에 가까운 그의 복수극은 단순히 ‘죽여야 한다’는 명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부숴야만 멈출 수 있는 집착 그 자체입니다.

한편 인남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잊고 지냈던 과거와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딸이 있었으며, 그녀가 태국에서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남은 곧장 방콕으로 향합니다. 오직 딸을 되찾기 위한 절박한 여정 속에서 그는 점점 과거의 죄책감과 맞서게 됩니다. 동시에 레이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며, 그의 마지막 여정은 끊임없는 죽음과 추격, 감정의 파열 속으로 밀려들어갑니다.

이정재 vs 황정민 – 감정의 결이 다른 두 괴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가장 큰 미덕은 단연 두 주연 배우의 강렬한 대결 구도입니다. 인남(황정민)은 말이 거의 없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행동과 눈빛으로 감정을 드러냅니다. 인남은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이며, 그의 싸움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황정민은 이 인물을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연기합니다. 특히 방콕 뒷골목을 홀로 헤매며, 경찰과 마피아, 그리고 레이의 추적을 피해 딸을 찾는 과정은 그의 내면 연기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한없이 무기력한 눈빛 속에서도, 딸을 향한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반면 레이(이정재)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인물입니다. 그는 절제보다는 과잉, 조용한 분노보다는 폭발하는 광기 그 자체입니다. 화려한 금발, 화장, 섬세한 손짓,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표정. 이정재는 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한국 영화사에 남을 미친 악역’을 완성합니다.

레이는 단순한 악인이 아닙니다. 그는 동생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었고, 복수를 통해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너무 잔혹하고, 결국 아무도 남기지 못한 채 끝을 향해 달립니다. 마지막 순간, 인남에게 칼을 겨누며 무너지는 그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도 공허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파격 적인 변신을한 박정민배우님 인상적이 였습니다.

액션과 정서가 공존하는 드문 누아르

이 영화의 액션은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기능을 합니다. 총격전과 칼부림, 추격전은 시종일관 스타일리시하게 묘사되며, 태국의 이국적 배경과 어우러져 독특한 질감을 만듭니다. 하지만 진짜 긴장감은, 총이 아닌 두 인물의 감정에서 나옵니다.

도심 한복판 총격전에서도, 골목길 맨몸 격투에서도, 관객은 ‘이들이 왜 싸우는가’를 알고 있기에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 복수와 보호, 죄와 구원, 분노와 눈물이 공존하는 이 영화의 정서는 액션 장면마다 스며들며 그 자체로 하나의 감정을 전달합니다.

또한 유이(박정민)라는 조력자의 존재는 영화에 작은 숨구멍을 만들어 줍니다. 트랜스젠더로 등장하는 유이는 냉혹한 남성들의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미를 보여주는 인물이며, 인남과의 관계를 통해 극의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박정민의 섬세한 연기는 영화의 감정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여전히 유효한 감정의 불꽃

2025년 지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두 톱배우의 재회 때문만은 아닙니다. 영화는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돈’, ‘폭력’, ‘죽음’이라는 겉모습 속에서, 이 영화는 사실 ‘지켜내려는 마음’, ‘부서진 관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인간’을 이야기합니다.

총보다 무거운 죄책감, 복수보다 허무한 감정, 사랑보다 더 절박한 보호 본능. 이 모든 것들이 영화 속에서 촘촘히 얽히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화려한 화면과 액션에 감탄하던 지난 관람과 달리,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눈물에 더 가까워질 수도 있습니다.

피와 총성 뒤에 남은 한마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단순히 멋진 액션 누아르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내면, 죄책감, 그리고 복수와 용서의 경계에 선 인물들을 통해 한 줄의 기도를 남깁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 말은 누군가를 향한 저주가 아니라, 끝없이 자신을 되묻는 탄식이자 절규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꺼내 본 이정재 vs 황정민. 그들의 싸움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마주하고 있는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응시하는 눈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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